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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거부하는 권한 행사, 완장질.

아무 것도 아닌 사람 (Nobody) 2020. 2. 1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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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일찌감치 출근해서 여유있는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막 출근한 직원 하나가 "큰일났어요"를 외치며 들어왔다. 지난 밤 대학원생에게 연구장비를 직접 사용하게 하였는데 장비 소모품 하나가 망가졌다는 것이다. 연구 장비를 쓰다보면 흔히 있는 일이다. 이 직원은 흥분하면 말이 빨라지는 편인데, 이번에도 숨가쁘게 말을 이어갔다. 같은 말의 반복이 주이긴 했지만 내용을 듣다보니 망가져서 어찌어찌 고쳐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누가 망가뜨렸는지, 역시 고문관이라느니 책임을 묻고 원망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러다가 그걸 받아든 어나더 원. 마치 걸리기를 기다렸다는 양 '다다다다다'. (유치하기 짝이없다. 완장질이 별건가 싶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책임이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책임을 빼고 권한만 보면 그 행동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전부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가난한 자가 하는 부자에 대한 욕의 이면에는 내가 부자가 아니라서 오는 입장차가 있다고 본다. 부자가 되면 자신도 그들과 똑같이 욕 먹을 짓을 하고 갑질하는 사람이 될 지도 모르지.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여튼 작은 실험실 장비 관리자를 맡겨놓으니 고장의 원인 진단과 해결 보다는 누가 그랬나? 책임을 묻겠다는 태도가 먼저인 걸 보니 앞의 생각들이 스쳐 씁쓸하다.
 

 
유시민 작가님은 이 구절을 다르게 바꾸어 말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자리가 사람의 내재한 본성을 이끌어낸다고 했던가? 정확한 구절은 생각나지 않지만 의미는 이러했던 걸로 기억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 역할을 할 만한 지위가 아닐 땐 모르다가 그 자리에 앉혀놓으니 그동안 할 수 없었던 나쁜 행동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걸 인지하는 단계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을 뿐이지. 어찌보면 다행이고 또 다르게 보면 애석한 일이다.
 

 

사람의 수준이 다름을 인정하는 게 차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가지 사안에 대해서 다르게 보는 것도 아니고 의도를 갖고 비난이 목적인 경우라면 그 수준을 언급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리의 역할은 사람의 그릇을 따져가며 주어져야 하는 것인가. 다들 스스로 저마다의 그릇이 크다고 여길텐데. 이런 구분마저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인성과 연결해서도 완장질 하는 사람은 능력을 떠나 그런 자리에 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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