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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

아무 것도 아닌 사람 (Nobody) 2019. 3. 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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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오래 해 온 어느 작가가 말했다. 자기 계발서는 그 책을 쓴 사람만 발전하는 분야라고. 이 말, 내용상 반박 불가. (단, 그 책을 쓴 사람 말에서 ‘만’은 아닐지 모른다. 세상 어디쯤 그의 책을 읽고 변화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 ‘일취월장’ 등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책을 읽고 변했다는 블로거의 글을 읽은 기억도 있고)

한 지인은 말했다. 자기는 자기 계발서를 혐오한다고. 그는 상당한 수의 자기 계발서를 읽었지만 별로 소득이 없었다고 한다. 개인적 경험이니 존중한다. 여기까지는. ‘쓸모없다’는 말이 내 뇌에 스파크를 일으켰다. 반박 모드 전환. 나는 자기 계발서 작가도 자기 계발서 옹호자도 아닌데. 출판되는 책들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를 두고 저리 쉽게 폄하해도 되나? 반박했다.

몇 주 후, 다시 만난 지인에게 (어쩌다 나온 얘기인지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글쓰기 작가의 말을 인용하여 “모 작가는 자기 계발서를 이렇게 말하더라"라고 말했다. 지인은 자신이 그 같은 말을 했다가 내게 욕을 먹었다고 한다. 기억의 왜곡. 지인이 생각하는 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보통 욕이라 하면 상스러운 말도 있겠고, 험담의 종류인 험담도 있겠고. 이 둘 중 하나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기억을 거슬러 가면, 내가 한 말의 취지는 자기 계발서 자체와는 큰 상관이 없었다. 지인의 주장 뒤에 따라오는 논증이 없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쓸모없다’는 말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 사고를 통해 발현된 x 꼰대스러운 x 꼬장으로 보였다. 그의 말을 듣자 하니 자신의 주장을 참인 명제로 믿는 듯이 보였다. 쉽게 말해, 그냥 싫다고 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면 편협해 보일까 걱정을 한 것일까? 나의 반박에 자신의 독서 경험을 빗대어 ‘쓸모없다’는 말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쓸모없다’는 말을 하려고 정말이지 ‘쓸모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격이었다.

자기 계발서뿐만 아니라 어떤 대상을 두고 ‘쓸모없다’고 "주장하려면 논증이 필요하다"라고 유시민 작가는 <글쓰기 특강>에서 말했다. 가볍게 오가는 대화라면 자신 앞에서 책을 펼쳐 훑는 사람에게 그리 심각하게 말할 이유가 없고, 삐딱한 마음에 내던진 꼬장이라 해도 이유는 반드시 필요하다. (뭐 세상사가 그렇듯 다 이유를 알 수도 없고, 알려주지도 않지만) 모든 주장이 참인 명제여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주장은 반드시 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쓸모없다’는 취향이다. 그가 근거로 든 다수의 자기 계발서를 읽은 경험과 소득이 없었다는 결과에 대한 경험은 객관화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전적으로 자신에게 한정된 경험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이들도 있겠지만 그게 다수라 해도 그걸 객관적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적당히 ‘나에겐 도움이 안 되었다. 나에겐 쓸모없었다” 정도로 말했다면 좋았겠다.

내가 그에게 인용한 작가의 자기 계발서에 대한 말. 난 그렇게 말하는 작가가 있더라는 정보를 전달했을 뿐이다. 공감의 의견을 보탠 것이 아니라. 그는 아직도 내가 자신이 자기 계발서 폄하(?) 대해 불쾌해서 반박한 것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여전히 “자기 계발서는 쓸모없다"라는 명제가 참이라고 믿고 있는 듯이 보이고. 자기 계발서 대신 다른 단어로 바꾸어 툭 던지듯 뱉어내는 그의 말들이 불편하다. 지금 '자기 계발서'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근데 자기 계발서의 범위를 어디까지 둬야 할까? 자기 스토리를 담아서 에세이 형식으로 쓴 것들도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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