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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이야기 - 결국 남 얘기

아무 것도 아닌 사람 (Nobody) 2019. 3. 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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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이번 주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춘천으로 이사 오고부터는 부모님이 사시는 곳과의 거리도 두 배로 늘어났다. 왕복 4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일주일에 한 번 오가는 것이 무척 지치는 일이기도 하고. 허리도 망가졌다.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침대에 누워있기로 했다. 5분쯤 지났으려나? 눈은 떴다 감았다 하고 몸은 좌우로 왔다 갔다 안 되겠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창문으로 비치는 빛을 보아하니 날씨가 좋을 것만 같다. 에라! 나가자!
막상 나가자고 결심하고 나니 조금 걷고 싶어졌다. 많이는 말고. 데이터 사이언스에 꽂혀서 독학하려고 산 판 다스 책과 맥북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한 이백 미터쯤 걸어가면 있는 투썸플레이스에 가기로 했다. 걷는 건 뭐 이 정도 걸으면 충분하지 뭐. 자리도 넉넉하니 좋잖아.
책을 펼치고 하나하나 코드를 따라 치고 실행해보고 진도를 빼는 중이다. 슬슬 집중이 흐트러질 즈음 옆 테이블에 앉은 무리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자 사람 하나, 여자 사람 둘인데 지금은 남자 사람이 한창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다. 마치 나도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착각이 들 만큼 잘 들렸다.
이야기는 이랬다. 남자 사람의 친구가 결혼을 했는데, 친구의 아내가 결혼 후 친정은 수시로 다니고, 친정엄마는 자주 만나면서 시집은 단 한차례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여자 사람 둘이 입을 모아 말했다.
"남자가 결혼 잘못했네!"
아, 저렇게들 생각하는구나. 시집이라는 말의 '시'자만 들어가도 무턱대고 예민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이건 남자, 여자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들은 우선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없진 않았지만 상식의 틀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남자 사람 시선의 왼편에 앉은 여자 사람이 말했다.
"그 남자, 애 없을 때 빨리 이혼해야 돼!" (글쎄요 ^^;)
와! 어쩜 이렇게 똑같을 수가. 세상 결혼한 남자들 다 이렇듯 비슷하게 살고 있는 건가?
남자 사람의 친구가 말하길, 결혼할 때랑 혼자 살 때랑 차이가 딱 하나라고 하더란다.
결혼 전에도 자기가 하던 걸 결혼 후에도 다 자기가 하니까 다 똑같은데 딱 하나 퇴근하고 집에 오면 누가 있단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고,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잔여 고통이 남아있을 만큼 힘들었다. 그렇다 한들 못 견디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사랑해서 한 결혼이니 더 참을 수 있었다면 스스로 칭찬하며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이해가 되는 날도 왔을지 모르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인 건 괜찮다. 둘이 만나 하나처럼 살다가 쪼개지면 그건 말 그대로 반쪽을 잃는 것과 같다. 내 생각엔 그렇다. 내가 그렇게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따질 수야 있겠지. 사람 인연이 어디 그렇게 되나? 아무리 사랑해도 힘들게 살기 싫은 사람도 있고,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 하나로 버티는 사람도 있는 거지.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한 계획도, 코딩 연습 좀 하겠다는 계획도 다 틀어졌다. 리프레시 하는 기분으로 카페에 들어왔는데 엉뚱하게도 남의 대화를 (엿) 듣고 나서 내 지난 시간을 되새기고 있다. 사연이 너무도 비슷해서 솔깃한 것도 있지만 그냥 소리 없는 웃음이 나올 만큼 흥미진진했거든. 다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다. 남의 말을 듣던 안 듣던, 후회를 하든 안 하든, 크고 작은 일에 대한 결정 모든 게 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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