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떠나길 바라며
[영화] 영화 '다음 소희' 후기, 영화보다 100배는 가혹했던 현실 본문
심야 영화: 오직 '다음 소희'를 보기 위한 발걸음
심야에 찾은 극장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 상영관 하나를 전세 낸 듯 티켓에 표시된 좌석 번호와 상관없이 스크린이 잘 보이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 하나 때문에 전기를 쓰고 상영관 직원들은 일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일었다.
당시 보던 드라마가 너무 슬퍼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감정이입을 잘하는 편이지만 표출을 잘 못하는 편이라 무척 힘들었는데, '다음 소희'를 보고 나서 한참 동안 슬픈 감정이 가시질 않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사건을 알고 영화를 본 사람의 말에 따르면 실제 사건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보다도 100배는 심했다고 한다. 고3 소희는 졸업을 앞두고 전화 상담 업무를 전담하는 회사에 현장 실습을 나가게 된다. 담임은 대기업에 현장 실습이라며 소희를 추켜세운다. 밝고 솔직한 성격을 가진 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기뻐한다.
소희가 직접 경험한 회사는 담임의 말과 달랐고, 소희가 기대한 회사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적응하면 괜찮겠지, 얼른 적응하면 괜찮겠지 생각했다.
'다음 소희'
신규 입사자 670명 중 629명이 일 년 안에 그만두는 곳. 학교는 이런 곳을 크고 좋은 회사라며, 실습을 보냈다.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현장 실습을 나간 곳에서 현장 실습을 나간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를 이상하게 본 경찰은 집요하게 사건을 파고든다. 밝아 보였던, 비록 취미로 하는 춤이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아이. 그런 아이가 현장 실습 중에 자살을 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를 그렇게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오유진은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학교, 회사, 본사, 지방교육청까지 찾아다닌다.
다들 서로에게 떠넘기기기에 급급한 모습, 아이가 죽었는데, 그것도 스스로, 다들 자기 핑계만 댄다.
참다못한 유진은 급기야 소리친다.
누구 하나 잘못했다는 사람이 없어!
상담원을 연결할 기회가 비교적 적은 편이었고, 다행히도 화낼 상황은 없었다. 보통 내가 더 낮아지는 편이다. 더 의식적으로 존중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소희'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개봉 당시 사비를 들여서 단체 관람 행사를 한 크리에이터도 있었고, 노동 인권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성원에 힘입어 관객 수 10만 명을 달성했다. 10만 명은 매우 중요한 숫자다. 노동 인권이 아직 제대로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지금이기에, 노동자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는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하고 극장에 상영되어야만 하기에.
충격적이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작품!
강요를 싫어해서 권유도 잘 안 하는 편인데, 이 영화만큼은 추천하고 싶다. 극장에서 못 봤다면, 아니 봤더라도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으니 꼭 한번 보기를 권한다. 나도 다시 한번 더 보려고. 넷플릭스 영화 순위 상위권에 올라서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그리고, 영화를 보던 안 보던, 제발 영화를 보고 스스로 우월감에 빠져서 "열심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타인의 어려움을 자신이 나아가는 밑거름 또는 위안으로 삼지 말라는 거다. 타산지석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사자성어가 아니다.
어렵겠지만, '다음 소희'가 더 이상 없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조합마저도 이권 카르텔로 몰아버리는 현실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우리를 존중하고 힘이 되어줘야 한다.
최근 벌어진 사건과 '다음 소희', 분노, 그리고 슬픔
문득 서이초등학교의 젊은 초등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떠오르면서 슬픔과 분노가 밀려온다. 비꼬려는 의도는 아닌데 그렇게나 카르텔 타파를 외치고 싶다면 교사를 하수인쯤으로 아는 일부 몰상식한 학부모 그룹, 아니 학부모 카르텔부터 타파하면 좋겠다. 카르텔을 담합으로 번역할 수 있다더라. 이쯤 되면 카르텔 맞지 않나? 너무 착해서 혼자 고민하고 외롭게 죽어가는 '다음 소희'가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생각 더하기
교사와 학생, 또는 교사와 학부모의 대립구도로 가서는 안 된다. 교직이 아니라 누구라도 고용된 사람이라면 처할 수 있는 상황이고 사측, 학교 측의 불성실하고도 무관심한 태도를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잡아야 한다.
법과 제도가 없어서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권위 또는 권력으로 누르는 자들과 거기에 동조하거나 눌려서 법과 제도를 그들에게 들이대지 않는 자들 때문이다.
체벌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데, 체벌이 있던 시절에도 힘과 돈이 있는 자들의 자녀는 체벌받지 않았다. '말죽거리잔혹사'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을 잘 표현했다. 군복을 입은 선생인지 알 수 없는 자가 학생을 그렇게나 때리면서 장성 아들에게는 깍듯하다.
개인적 생각을 하나 붙이면, 선생님을 때린 그 아이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힘이 있다고 함부로 힘을 쓰면 어떻게 되는지 본인이 겪게 해야 한다. 어리다고 해서 관용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부모는 아이를 대신해서 법적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와 같은 학부모가 있으니 세상 무서울 게 없는 놈이 자라나는 것이다. 용서만이 능사가 아니다.
일단, 교사와 학부모가 직접 소통하는 일이 없도록, 그 소통창구를 폐쇄해야 한다. 하긴 사건이 터지고 나자 무슨 일만 생기면 톡을 보내던 학부모들이 숨죽인 듯 조용하다고 한다. 자기들도 아는 거지. 그동안 지들이 한 짓도 그 초딩이의 부모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다음 소희'에서 전화 상담원에게 뭐든 다 해달라는 식으로 말하는 몰상식한 인간들이 이런 학부모와 같고, 이런 학부모 밑에서 자라난 놈들이 또 몰상식한 어른이 되어 남의 감정 따위 아랑곳 않게 되는 것이다. 안 그런 사람도 많다고? 그걸 누가 몰라? 결국 사람을 끝까지 모는 건 그 몇 안 되는 사람들 때문이고 그걸 막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선한 보통 사람들 때문이라서 하는 말이잖아. (Calm down, 워워워워, 흥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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