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떠나길 바라며
[영화] '악인전' 때늦은 리뷰 본문
<악인전> 제목처럼 악인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범죄도시>, <성난 황소>, <챔피언> 등에서 엄청난 괴력을 보여준 배우 마동석이 조폭 두목인 장동수역을 맡았다. 조폭 두목은 곧 악인이라는 공식(?)이 생각나기도 한다. 장동수는 조폭 세계에서는 무자비하기로 악명 높은 인물이지만 이유 없이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악인인데 악인 아닌 악인 같은 인물이라고나 할까? 다른 주인공은 정태석 형사로 등장하는 김무열이다. 악인전이니까 이 사람도 악인이어야 하는데, 형사로서의 남다른 정의감을 보이는 인물은 아니지만 악인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조폭이나 살인범은 다 똑같은 놈이라는 생각이다. 마지막 악인은 김성규가 연기한 K다. <범죄도시>에서도 악역이었다. 진선규 배우가 크게 뜬(?) 것에 비해 조용했지만 <악인전>에서는 사실상 주인공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연기를 보자니 <박수 칠 때 떠나라>에서 범인으로 출연한 신하균 배우가 떠올랐다. 앞으로 영화에서 자주 보게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앞서 언급한 범죄 액션 영화처럼 <악인전>의 줄거리도 간결하다. 경기, 충청 지역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두고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이라는 촉이 온 강력반 형사 정태석, 그는 이 연쇄살인범을 미치도록 잡고 싶다. 평소와 달리 혼자 운전해서 퇴근하던 조폭 두목 장동수는 우연히 연쇄살인마의 표적이 되어 두 시간의 수술 끝에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다. 얼마 뒤 회복한 장동수 역시 자신을 건드린 놈을 그냥 둘 생각이 없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이 둘은 연쇄살인마 K를 잡기 위해 손을 잡는다. 나쁜 놈 둘이 더 나쁜 놈 하나를 잡는다. 잡아서 처리하려는 방식이 다르기에 룰을 정했다. 먼저 잡는 사람이 갖는다. 마음대로 처리한다.
형사 정태석, 조폭 장동수, 이 둘의 일상은 보통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들 만큼 험악할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이런 모습은 초반 주인공 캐릭터를 알리는 용으로 잠깐 등장하지만 전체 이야기 전개에서 보면 그렇게 악인이라는 느낌은 안 든다. (나만 그런가? ^^;) 연쇄살인마를 잡는다는 공통의 목적이 있어서인지 형사와 조폭의 콜라보는 어떤 부분에서는 인간적이기도 하다. 초반 사건 한 방 크게 해결해서 진급하자는 형사나 자기를 건드린 놈을 잡아 복수하겠다는 조폭 두목의 모습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나쁜 놈을 잡아서 없애야 한다는 의지도 드러나고, 연쇄살인마가 벌인 이 게임(?)을 이기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드러난다.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조연들이 이야기의 개연성에 크게 상관있어 보이진 않지만 이 점이 오히려 나는 리얼하게 보였다. 실제 생활에서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에 안타까워하지만 그 일에 상관관계가 없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 일이 일어난 원인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형사과장이 조폭의 뒤를 봐주며 돈을 받는 것도, 다른 조직 보스가 죽는 것도, 조직 간의 세력을 다투는 과정도 사건 해결과는 상관없다. 그저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사건 해결이 되었다고 해서 이런 상황이 밝혀진다거나 문제시되는 것도 아니다. 아! 장동수가 정태석의 애환을 위로(?)할 즈음에 허상도(유재명 배우 분) 조직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이 역시 K의 계략에 의한 것. K에게는 게임과도 같은 것이었나?
형사와 조폭 두목의 목적이야 워낙 뚜렷하니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고, 연쇄살인마 K는 대체 무슨 이유로 살인을 하는 걸까? 그의 노모는 그가 세상 착실한 청년이라며 두둔한다. 심지어 교회도 열심히 다닌다고 한다. (여기에 '교회를 굳이 언급한 이유는 뭘까?' 생각했다.) 여성이나 약한 대상을 상대로 한 사이코패스의 범죄와 달리 그는 대상에 상관없이 무작위로 사람을 공격하여 죽인다. "애가 무슨 죄야?"라는 대사를 듣고는 '어릴 적 받은 학대가 심했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형사의 K에 대한 브리핑 장면에서 이런 언급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여하튼 트럭 운전기사를 무참히 살해하고 그의 차까지 탈취한 K가 조수석에 놓인 생일 케이크를 보는 장면에서, "애 생일이 중요하냐?"던 트럭 운전사의 말에 대해 '오해했구나' 생각하며 조금은 당황한 모습을 보일 걸로 예상했다. 그는 사이코패스란 걸 알면서도. 그건 내 마음을 투영한 결과일 뿐 K는 우악스럽게 맨손으로 케이크를 뜯어 자신의 허기를 채울 뿐이다. 외부에서 보기엔 무작위로 목적 없이 살인을 하는 듯 보이지만 이 연쇄살인마는 살인 자체가 목적이고 여기에 일말의 죄의식도 없다. 재판 과정에서 하는 말, "여기에 있는 사람이 죄가 없다면 나도 죄가 없다"는 말에서 이자의 인식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어차피 다른 블로그에서 영화 줄거리는 소개하고 있으니 이 정도만 얘기하고 맺어야겠다. 지루하지 않은 전개, 배우들의 연기만 보아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자 즉흥적으로 본 영화인데 잘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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